신봉기 경북대 교수가 본 친일파...일본이 남긴 35년 시스템 ‘독일과 일본’

천인공노할 원흉 일본의 국가영웅...친일파, 나의 기억...

이영노 | 기사입력 2019/08/12 [07:59]

신봉기 경북대 교수가 본 친일파...일본이 남긴 35년 시스템 ‘독일과 일본’

천인공노할 원흉 일본의 국가영웅...친일파, 나의 기억...

이영노 | 입력 : 2019/08/12 [07:59]

▲ 신봉기 경북대교수     ©이영노

친일파 문제가 이렇게나 심각하게 논의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적어도 내가 공부를 마치고 귀국한 이래로는 말이다.

1989년 이래 IMF 치하에서도 또 노무현 대통령 당시조차도 이렇게까지는 아니었다.

 
독일은 너무 멀었다. 젊었을 때는 1~2년에 한 번씩은 다녀오던 독일도 나이가 조금 들고 나니 조금씩 간격이 길어졌다.

 

12시간정도의 비행기 탑승시간은 정말 한두 번은 모르지만 그것은 괴로운 여정이었다.

 

심지어 오가는 시간만 줄어든다면 훨씬 자주 다녀올 수 있을 텐데 하는 마음이 굴뚝같았다. 일거리를 안고 나가니 더더욱 그런 마음이었을 게다. 물론 도착하면 마음이 달라지긴 했다.

 
 독일인과 일본인의 깔끔한 일처리는 비슷하다. 얼렁뚱땅이 없다.

 

우리에겐 천인공노할 원흉이지만 일본의 국가영웅인 이등박문(Itō Hirobumi, 伊藤博文)이 독일과 영국 프랑스를 돌며 얻은 지식으로 메이지(明治)헌법 초안 작성과 양원제 도입의 기틀을 닦은 것도 우연이라기보다는 민족성이 비슷한 면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도 있다.

 

물론 세계대전(Weltkrieg)의 주범 국가지만 전쟁범죄의 사후처리에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국제적인 이미지는 상반된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무기한으로 처절한 반성을 하는 독일민족과 모든 것을 덮고 피해국에 책임을 덮어씌우는 일본민족은 본성이 다른 이들이었다.

 

그건 주지하는 바이고 공감하는 것이니 더 이상 언급을 하지 않으려 한다.

 
 일본은 우리에게 제도적으로 많은 것을 남겼다.

 

일제강점기 35년은 우리의 시스템을 근본부터 뒤바꿨고 해방이후에도 그런 제도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됐다.

 

버젓이 법제사적으로 우리 법제는 “일본을 통한 독일법의 계수(繼受)”로 평가됐고 또 “독일법제의 필터기능(Filterfunktion)”을 통해 변질을 가져왔다.

 
 본래 오리지널(original)이나 전통적(traditional)이라는 용어는 ‘고전적’이라는 말로 번역되면서 다소 부정적인 즉 탈피해야 하는 것인 양 곡해되었던 것도 우리 위정자들과 학자들 그리고 교육자들에게 책임이 있다.

 

그래서 제각기 가장 잘 시스템화되어 있는 미국식 대통령제와 독일식 의원내각제는 권력의 독점화를 위해 좋은 것들만 취사하여 ‘한국식 민주주의’라며 국민들을 호도하기도 했다.

 

바로 한국형 대통령제인 유신헌법(維新憲法)이 태동하게 된 배경인 것이다.

 

당시 우리 사회의 식자층에서는 이것을 환호하며 선전에 나선 이들이 적지 않았음은 지금이라도 자인해야 할 일이다.

 
 머나먼 독일을 방문하는 것이 힘들어 민족성은 다르지만 일본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었다.

 

헌재에서 대학으로 이직한 이후의 일이다. 2000년대 접어들어서의 일이다.

 

실은 많은 귀중한 독일문헌은 일본학자들에 의해 번역되어 있고 우리 학자들은 그것으로 독일 제도를 공부했다. 그 문헌을 우리말로 번역하여 자신의 저작물로 대학자로 추앙받는 교수들도 분야별로 적지 않았다.

 

우리 법학계 특히 공법학계에서도 90년대 초중반에 수면 아래에서 쉬쉬하던 공공연한 일을 공개적으로 학회에서 비판하며 식민지법학을 탈피하고자 했던 H교수 사건이 있었다.

 

옳은 일은 항상 이단아처럼 비쳐지기 일쑤다. 그 분의 학문적 강직함은 존경도 받았지만 오히려 거부하는 분위기가 더욱 강했다. 그 분은 한동안 많이 힘들어 하셨고 지금은 타개를 하셨다.

 
 아쉽게도 우리 학계에서는 더 이상 그런 분을 찾기가 어렵다.

 

더 큰 본질적 논의는 간과한 채 미시적 연구에 함몰돼 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학계의 흐름을 뒤바꿀만한 대형 초대형 이슈를 던지는 것이 필요한 일이지만 그런 ‘강단 있는’ 1세대 2세대 학자들은 모두 가셨고 지금은 나를 포함한, 가치관이 편협한 3, 4, 5세대의 학자들만 남아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난 가끔 만나는 ‘돌출적인’ 학자들에게 관심이 가고 그들의 생각의 근원을 읽으려고 그들에게 천착하는 일도 있었다.

 

비난을 받더라도 그러한 소신을 견지하는 것은 어느 사회든 어느 학문영역에서든 “적어도 이런 주장을 하는 학자가 한 사람 정도는 있어야” 다양성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하기에 그것을 비난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어느 일방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위험하고 무서운 것은 없다. 그야말로 전체주의((全體主義, totalitarianism) 사회로 갈 위험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 스스로가 이성적으로 잘 판단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이 사건은 내가 그야말로 ‘지일파’일지 아니면 ‘친일파’일지는 모르지만 일본에 대한 우호적 인사가 될 기회를 놓치게 된 일이었다. 그것이 지금으로서 옳았던 것인지는 알지 못하겠다.

 

하지만 독일유학으로 ‘독일파’ ‘친독파’ ‘독일유학파’ 소리를 들으며 독일법학에 대한 나름의 전문가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을 보면 일본에도 우호적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도 친일파인가? 그래서 이런 과정의 아쉬움을 뒤로 한 나의 지난 행적도 친일파적 족적인지 자문한다.

 

하지만 여전히 난 일본을 잘 모른다.

난 아직도 친일파도 지일파도 아니다.

 

그저 우리를 강점 수탈한 인접국가인 일본만을 보고 느끼고 있다. 그것이 내가 보는 일본이다. 그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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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원에서 조용히 있으면 온갖 생각이 떠오른다. 다른 이의 글을 보며 드는 영감을 흘려버리기가 아깝다. 기억을 또 되 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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