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지원 시스템을 구축해야 ~

'기본소득'은 기본이 아닐까?

이영노 | 기사입력 2021/02/27 [17:56]

재난지원 시스템을 구축해야 ~

'기본소득'은 기본이 아닐까?

이영노 | 입력 : 2021/02/27 [17:56]

정균승 군산대 교수     ©이영노

코로나 이후의 세상은 어떻게 달라질까?

 
코로나 이전의 상태로 복원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마치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가 그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졌던 것처럼.

 
가장 염려스러운 것은 경제적 불평등이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는 점이다.

 
코로나 대유행은 일차적으로는 환경 재난이라 할 수 있지만, 이차적으로는 경제활동을 마비시켜 엄청난 경제 재난을 동반한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이중재난'을 몰고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중재난은 필연적으로 계층간 격차를 더 벌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아주 오래전 농경사회로 한번 거슬러 올라가보자.

 
문헌에 의하면 고려시대 이후 가뭄이나 홍수가 났을 때 역병까지 돌게 되면 걷잡을 수 없는 대혼란이 일어나곤 했다.

 
자기 땅을 가지고 있어도 자연재해에다 역병까지 창궐하면 농사를 지을 수 없었다.

 
일단 목숨은 부지해야 했기에 춘궁기에 곡식을 빌려다 먹고 추수가 끝나면 돌려주기로 했던 자영농들조차 환곡을 하지 못해 자식 같은 땅을 내놓고 소작농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자영농이 이럴진대 하물며 그보다 더 하층계급의 상황은 어떠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소작농들은 제때 소작료를 내지 못해 급기야 노비 신세가 되었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초근목피로 연명하며 목숨을 부지했고, 굶어죽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그러는 사이에 재난을 이겨낼 여력이 충분했던 부농이나 대농들은 헐값으로 나온 땅을 사들여 오히려 더 부를 증폭시켰다.

 
극심한 재난이 빈부격차를 더욱 심화시킨 것이다.

 
팬데믹으로 이미 여러 차례 만신창이가 된 오늘날의 경제상황도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여파로 사람들의 왕래가 끊기면서 중소상공인들이나 영세 자영업자들의 손해가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니다.

 
버티고 버티다 한계상황에 이르면 할 수 없이 피눈물을 머금고 폐업이나 휴업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 뿐만이 아니다.


고용된 직원이나 아르바이트 종사자들도 연쇄적으로 고통을 떠안는다.

 
임시직이나 특수고용 노동자 또는 플랫폼 노동자들도 예외가 없다.

 
감봉을 당하거나, 울며 겨자먹기로 무급 재택근무를 해야 하거나, 일자리를 잃게 된다.

 
수입이 없으니 월세도 내지 못해 주인에게 쫒겨나는 신세가 되고, 끼니를 떼우기조차 버거운 상황이 된다.

 
중산층 역시 직장을 잃게 되면 실직자로 지내거나 심하면 파산자로 내몰린다.

 
그렇지만 대기업이나 많은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부유층은 큰 걱정이 없다.

 
오히려 이 틈을 타서 자산을 더 늘리거나 더 많은 부를 불려나가는 마음 아픈 상황들이 속속 일어나고 있다.

 
물론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전 세계가 마찬가지긴 하지만 코로나와 불황이라는 이중재난이 지속되면서 경제적 불평등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

 
이와 같은 비상사태를 개개인의 문제로 돌리고 국가가 뒷짐을 지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겠는가.

 
더군다나 사태가 장기화되고 일자리마저 점점 줄어들 것이 뻔한 마당에 임시방편의 처방만으론 어림도 없다는 것을 누구나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재난지원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지 않겠는가.

 
설사 지금의 코로나 상황이 다소 진정되더라도 소리없이 밀어닥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의 파고는 또 어찌 대처할 것인가?

 
인공지능과 로봇이 상당수 일자리를 대체해버리게 될 그리 머지 않은 미래를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지금부터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설사 4차 산업혁명으로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난다 해도 기존에 일자리를 잃었던 사람들이 신생 일자리로 들어가는 것은 기술적으로 그리고 구조적으로 어렵지 않겠는가.

 
마치 마차를 끌던 마부가 자동차의 출현으로 실직자가 되었다고 해도 바로 택시 기사가 될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만일 개인의 능력으로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면 먼 옛날 우리 조상들이 그렇게 되었던 것처럼 지금보다 더 아래의 하층민으로 전락해야 하는 걸까?

 
헬조선을 외치며 살던 땅을 등지고 아예 타국으로 떠버릴 바가 아니라면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할텐데 말이다.

 
그렇다면 '기본소득'은 기본이 아닐까?

 

 
적어도 이 땅에 정을 붙이고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겐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같은 맥락에서 가칭 '기본일자리제'를 통해 누구나 최저한도의 생활임금 수준에서 가치있는 일을 제공함으로써 세상에 기여하면서 당당하게 기본소득을 받는 세상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10년 후의 내 미래를 생각한다면, 30년 후의 내 자녀들을 걱정한다면, 그리고 50년 후의 미래세대를 위한다면, 우리가 지금부터 너나 할 것 없이 함께 지혜를 모으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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