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뉴스=이한국 기자] 전북서부보훈지청은 국가보훈처에서 7월의 독립운동가에 이신애 선생과 6.25 전쟁영웅에 이명수 일등상사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이달의 독립운동가 이신애 선생은 평안북도 구성 출신으로 루씨여학교 두산리분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던 중 독립운동에 투신, 1919년 9월 서울로 올라와 조선민족대동단에 가입하였다.
대동단은 10월 초순 본부의 상하이 이전과 의친왕 이강의 망명을 동시에 추진하다가 일제에 적발돼 조직이 사실상 와해됐으나, 이신애 선생은 동지들과 11월 28일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한 종로 안국동 광장에서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백기를 펼쳐 들고 만세와 함께 독립선언서를 배포했다.
이후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선생은 1920년 3월 1일 서대문형무소 같은 동에 있던 유관순 등과 함께 3.1운동 1주년을 맞아 옥중에서 만세를 부르다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심한 고문을 당하였다. 광복 후 선생은 충남 공주읍 옥룡동에 살며 한국부인회를 조직했고, 1947년부터 11년간 부녀계몽운동에 투신했다. 정부는 대동단의 여성대표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선생의 공적을 기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다.
이달의 6.25전쟁영웅 이명수 일등상사는3사단 22연대 3대대에서 임무 수행 중이었는데, 1950년 7월 북한군 제 2군단은 낙동강 전선을 공격하고 대구와 부산의 길목을 차단하기 위해 포항으로 진군했고, 국군 제 3사단은 이를 저지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포항 북쪽의 영덕과 강구 중간지점의 요충지인 181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제 3사단은 특공대를 편성, 가장 위협적인 북한군 전차를 격파하기로 결정한다. 이를 위해 이명수 일등상사를 대장으로 하는 12명의 특공대가 선발됐다. 그는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면 우리는 포항까지 후퇴하거나 동해안의 물귀신이 돼야한다. 필승의 신념으로 임해주기 바란다.”며 특공대원들을 독려했다.
특공대가 갖고 있는 무기는 오직 몇 발의 수류탄뿐. 하지만 특공대는 두려움 없이 적군의 전차위에 올라타 수류탄을 투척하며 총 3대의 전차를 무력화 시킨다. 그와 특공대원의 목숨을 건 용기로 인해 적군은 포항 진격에 차질을 빚게 됐고, 국군과 유엔군은 낙동강 방어선 구축에 필요한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맨손으로 전차에 맞섰던 그의 투혼은 전설로 남게 됐고, 그는 사병 최초로 군인 최고의 영예인 태극무공훈장을 받았고 지난해 1월 향년 88세로 별세했다. <저작권자 ⓒ 오늘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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