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반역하는 교과서 채택 방해

이영노 | 기사입력 2014/01/13 [00:42]

역사를 반역하는 교과서 채택 방해

이영노 | 입력 : 2014/01/13 [00:42]
<기고> 전대열(전북대 초빙교수)

우리 헌법은 언론의 자유와 교육의 자유를 명시하고 있다.
 
언론과 교육은 한 탯줄이어서 어느 한쪽이 속박을 받으면 남은 다른 쪽 역시 속박을 받게 된다.
 
지금 한국에서 언론의 자유가 없다는 말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과거 군사독재시절에 언론은 재갈을 물린 채 정부의 입맛에 맞는 사실만을 보도하고 해설해왔던 쓰라린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에 맞서 1975년 심재택을 중심으로 한 동아일보의 젊은 기자들이 자유언론선언을 하고 노조를 결성한 일이 있었다. 정부는 일체의 광고를 하지 못하게 기업체에 압력을 가했고 동아일보는 백지광고나 개인의 격려광고로 꿋꿋이 맞섰다.
 
결국 사주(社主)의 항복으로 기자 130여명이 해임되는 것으로 끝을 맺었지만 이 자유언론선언은 ‘87년 민주화 이후 최대의 자유언론운동으로 부각되었다.
 
교육계도 마찬가지였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교과서를 낭독해주는 수준에서 일보도 전진할 수 없었고 그들의 강의내용은 깡그리 정보부의 감시 대상이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의견을 밝힐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한마디로 산교육이 아닌 죽은 교육을 시키는 대로 해야만 했던 것이다.
 
민주화 이후 이런 현상은 사라졌다. 일간지는 물론 주간지나 월간지 하나 등록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였으며 심지어 출판사조차 서울 지역에서는 받아주지 않아 지방에 등록하는 난센스를 연출했다.

 H일보 기자였던 박실이가 고향 정읍군에 출판사 등록을 하고 서울사무소라는 이름으로 남산 밑 사무소를 경영한 얘기는 지금은 웃으면서 얘기하지만 언론 억압의 상징적 사례다.
 
교육계는 민주화 이후 날쌔게 전국교원노조를 결성했다. 4.19혁명 이후 교원노조가 결성된 일이 있지만 5.16과 함께 치도곤을 맞고 사라졌다.
 
그 뿌리가 남아서 새로운 노조를 결성했지만 불법의 굴레를 벗지 못하다가 김대중정부에서 합법화시켰다. 교원노조는 교육권의 자유를 주장하며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지만 그 후 지나치게 이념화하여 종북좌파의 온상이라는 손가락질을 받기에 이르렀다.
 
이념이라는 것은 학문적 개념으로 정립될 수도 있지만 각론에 들어가면 개인의 신념, 확신, 주장과 엇갈리는 수가 많다. 따라서 어느 단체나 개인의 사상이나 주장만이 우리 사회의 최종적 목표가 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이 세상에는 60억이 넘는 인구가 살고 있으며 그들의 생각은 모두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해야만 진정한 교육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며 균형 잡힌 이념이 존재하게 된다. 이를 부정하는 행위는 교육의 자유를 망각한 것일뿐더러 사회 기강을 무너뜨리는 범죄로 발전할 수 있음을 깨달아야만 한다.
 
이번에 새로 발간된 8종의 역사교과서를 두고 우리는 곤혹스런 사회적 갈등을 겪고 있다. 왜 이다지도 이념에 천착하고 있을까. 있는 그대로,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면 될 것을 일부러 꼬이게 만드는 장본인은 누구일까. 검인정 역사교과서 8종 중 교학사 교과서만이 유독 이념의 제물이 되어 갈 곳을 찾지 못하고 학교 지붕 위를 떠돌고 있다. 교학사 발행본만이 보수적 색깔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원죄처럼 회자된 때문이다.
 
 역사교과서가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끼치는 영향력은 크다.

아무도 경험한 일이 없는 과거의 사회상이나 전쟁의 유형, 등장인물들의 행적 등 가치관을 결정하는 시기의 고등학생들에게는 엄청난 영향을 끼칠 것이고 거기에서 애국심을 기를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일찍이 간파했던 중국의 역사학자 사마천(司馬遷)은 궁형(宮刑)의 아픔 속에서도 기원전 104년에 후세역법의 기초가 된 태초력(太初曆)을 제정하고 130권의 사기(史記)를 지었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페르시아 전쟁을 중심으로 동방제국 역사를 기록하고 유럽 최초의 사서인 ‘역사’를 써 역사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지 않은가. 우리나라 역사는 반만년에 이르면서도 기록을 남기지 못하여 겨우 고려시절 중 일연의 삼국유사(三國遺事)와 김부식의 삼국사기(三國史記)로 체면을 유지하고 있다.
 
근세에 들어와 독립운동을 하면서도 역사의 중요성을 잊지 않았던 박은식과 신채호 등이 ‘독립운동 혈사’ 등으로 한민족의 항일투쟁을 기록한 것은 그들의 탁월한 사명감이 아니었다면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다.
 
우리는 이번 역사교과서 채택과 관련한 극히 일부 세력들이 학교에 협박을 가하고 시위를 하며 SNS 등으로 국민의 진정한 의견을 왜곡한 행위는 철저히 조사하여 형사처벌로 경종을 울려야 된다고 생각한다.
 
어떤 교과서를 채택하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학교의 재량에 맡겨야 한다. 특히 학교운영위원회는 학교 시설이나 교육환경, 급식 등에 관한 사항을 다루는 모임이지 교과서 채택이나 수업 등 직접적인 교육에 대해서 이래라저래라 할 수는 없다. 일부 학교가 학운위에 교과서 채택을 맡긴 것은 교육권을 포기한 행위다.

역사는 균형 잡힌 사상을 기조로 했을 때만 올바른 평가를 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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