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기념관이 꼭 필요한가?

이영노 | 기사입력 2014/03/27 [12:14]

이승만기념관이 꼭 필요한가?

이영노 | 입력 : 2014/03/27 [12:14]

 
<기고> 전 대 열
4.19혁명공로자회 편집위원장. 전북대 초빙교수
 
3월25일자 조선일보 오피니언 발언대를 통하여 이승만기념사업회 김일주 전 사무총장은 이승만기념관을 건립해야 되는 당위성을 설명하고 나섰다.
 
그는 해방 3년간의 공간 속에서 초강대국 미국과 소련이 싸우는 한 통일된 한반도는 불가능하다고 본 이승만을 어느 누구보다도 국제정세에 밝았던 인물로 표현하면서 남한의 단독정부 수립을 옹호하고 있다. 당시의 시대상황은 김구의 남북협상론과 미.소의 대립 등 복잡다기한 것이어서 현실적으로 통일정부 수립은 어려웠다는 점은 동의한다.
 
다만 단정(單政)을 고집한 이승만을 냉혈인간이라고 비판한 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슬쩍 비추면서 죽산 조봉암이 위기에 처했을 때 “빨리 도망가”라는 신호를 보냈다는 증언이 있다고 강변하여 인간미가 남달랐다는 얘기는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든다. 유석 조병옥박사가 신병치료차 미국으로 갈 때 금일봉을 ‘직접’ 전했다는 얘기도 처음 듣는다.
 
안두희의 흉탄에 쓰러진 백범 김구의 시신을 붙잡고 통곡한 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안두희를 석방하여 육군 장교로 복귀시킨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
 
이런 정도의 일화를 이승만의 따뜻한 인간성으로 부각시키고자 하는 뜻은 짐작이 가지만 국민을 감동시킬 수 있는 수준은 못된다.
 
 김일주 전 총장은 이승만이 ‘북진통일’을 외치고 ‘반공포로를 석방’하여 미군을 한반도에 붙잡아두는 외교적 전술을 구사했다고 말하고 있지만 전쟁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판에 미군을 포함한 유엔군이 철수할 수 없었던 점은 다른 설명이 필요하지도 않다.
 
 특히 반공포로 석방은 미군과 상의 없이 단독으로 강행하는 통에 2천 명이 넘는 포로들이 도망치다가 사살되었다. (통일안보 중앙협의회 회장 연창익 증언)
 
휴전회담이 끝난 후 그들에게는 자유의사를 물어 선택권을 줬기 때문에 반공포로석방이 특별한 공적으로 현창(顯彰)될 수도 없거니와 오히려 외교마찰을 심화시킨 측면도 있다. 작년도에 국가보훈처가 이승만기념관 건축비 350억원과 전집비용 5억원의 예산을 책정하여 기재부에 올렸으나 국회에서 전액 삭감되었기 때문에 올 정기국회에서는 이를 부활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구태여 탓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대통령기념관’이 건립되어 역대 대통령을 한 곳에서 모두 기념할 수 있기를 국민들은 바라고 있다.
더구나 이승만에 대해서는 3.15부정선거와 부패정치로 인하여 국민의 힘에 의해서 강제로 하야한 불행한 대통령이다. 그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경찰에 발포명령을 내린 최고. 최후의 책임자이기 때문에 185명의 희생자와 6,000여명의 부상자에 대해서도 어떤 형식으로라도 책임져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4.19혁명의 역사적 의의는 3.1운동과 더불어 헌법전문에 기록된 국민의 합의가 이뤄진 사항이다. 이승만기념관, 동상건립, 영화제작, 전집발간 등 역사를 거스르는 추종세력들의 주장은 국민을 납득시킬 수 없다. 첨예하게 의견이 대립될수록 이승만의 치부는 더욱 부각된다.
 
 먼 훗날의 역사 심판을 기다리는 것이 옳은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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