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열 칼럼] 정당방위는 폭넓게 인정되어야

이영노 | 기사입력 2014/11/03 [01:33]

[전대열 칼럼] 정당방위는 폭넓게 인정되어야

이영노 | 입력 : 2014/11/03 [01:33]
(전대열/전북대 초빙교수) 캄캄한 밤중에 길을 걸어가면서 무서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금은 천만이 넘는 대도시들도 옛날에는 가로등 하나 없는 어둠의 길이었으며 암흑을 틈탄 온갖 범죄들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

가로등이 환하게 밝혀진 시내 중심가에서도 범죄는 날카로운 눈을 번뜩이며 만만한 상대를 고른다. 하물며 캄캄한 밤길에서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가장 무섭다”는 말이 실감난다. 특히 시골길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가로등은 물론이요 나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어 동행자라도 있으면 모를까 혼자서 걷기는 매우 어렵다.
 
이런 길가에서 숨어있던 괴한이 갑자기 나타나 돈을 요구하거나 성폭행을 시도했을 때 두렵기는 하지만 죽기 살기로 대항하지 않을 수 없다. 주먹을 휘두르고 발로 찬다. 대부분 기습을 감행한 범죄자가 행인을 제압하고 목적을 달성하겠지만 필사적으로 저항한 행인이 범인을 때려눕힐 수도 있다.
 
이 경우 피해자이면서 가해자가 된 행인은 경찰이 제시하고 있는 정당방위의 기준을 평소에 잘 지득(知得)하고 있다가 그대로 실천하지 않으면 자칫 엉뚱하게도 가해범죄자로 전락할 개연성이 크다. 범죄자의 공격에 대항하여 맞대응을 하더라도 소극적으로 자신을 보호하는 범위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 경찰지침이다. 상대가 주먹으로 내려치면 막기만 해야 된다는 논리다.
 
형법 제21조는 1.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한 상당한 이유가 있으면 처벌하지 않는다. 2. 방위행위가 그 정도를 초과한 경우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한다. 3. 전항의 경우 그 행위가 야간 기타 불안스러운 상태 하에서 공포 경악 흥분 또는 당황으로 인할 때 처벌하지 않는다고 정당방위의 요건을 나열해놨다.
 
이 조항의 문구로만 보면 정당방위를 폭넓게 인정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법을 실제로 운용하는 과정에서 살피면 전혀 그렇지 않은 측면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번에 1년6월의 중형을 선고받은 21세의 청년은 한 밤중에 귀가했다가 장롱을 뒤지고 있는 도둑과 마주쳤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의 누구라도 당사자라고 생각해보라. 얼마나 놀라고, 두려울 것이며, 당황하고 흥분될 것인가. 좁은 집안에서 가족들의 안위가 제일먼저 떠오르는 걱정이었을 것이며 순간적으로 도둑을 잡아야 한다는 본능이 작용했을 것이다.
 
이 청년은 도둑과 치고 패는 싸움을 할 수밖에 없었고 다행히 상대를 제압했다. 그런데 청년은 불행하게도 정당방위 지침을 모르고 있었다. 지침에 따르면 1. 상대의 피해정도가 자신의 피해정도보다 적어야 하며 2. 치료하는데 3주 이상 걸리는 상해를 입혀선 안 된다고 못 박고 있다.
 
그렇다면 한참 공방전을 벌이는 와중에서도 상대의 상처부위를 살펴가면서 완급을 조절해야 된다는 논리 아니고 무엇인가. 이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극도로 흥분된 상태에서 죽을 각오로 싸우는 게 생판 모르는 도둑과의 격투 아닌가. 더구나 3주 이상의 상해를 입혀선 안 된다는 얘기는 의사가 심판을 보면서 그 자리에서 진단서를 때줘야 한다는 개그 이상의 탁상공론이다.
 
차라리 정당방위로 인정할 수 없으니 범죄자의 요구에 순순히 응하고 일체의 대항을 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는 게 어떠한가. 도둑을 제압한 청년이 스물한 살이고 도둑은 50세라는 것을 과잉방위로 몰고 가는 논법도 사리에 어긋난다.
 
남의 집에 들어온 도둑의 나이까지 물어가면서 싸워야 한단 말인가. 불행하게도 도둑은 의식을 잃고 입원 중이고 청년은 아무 죄도 없이 1년 6개월 감옥살이를 해야 한다. 더군다나 전과가 없는 청년에게 상습폭력전과가 있다는 신상털기를 검찰에서 자행했다. 과거 보호처분을 받았던 것을 상습폭력전과자라고 확대하여 보도 자료를 냈다가 머쓱해서 물러났다.
 
범죄전과로 치지 않는 보호처분을 전과자로 몰아간 것은 검찰기소의 정당성을 강조하려 한 것이겠지만 청년은 억울하기만 하다.
 
그는 형법 제21조 3항의 “야간 기타 불안스러운 상태 하에서 공포 경악 흥분 또는 당황으로 인할 때”에 해당되어 당연히 처벌대상에서 면제되는 것이 사회정의요 사법정의다. 2항에서도 “방위행위가 그 정도를 초과한 경우에도 형 감경 또는 면제”를 명시하고 있다. 1항의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행위를 방위한 상당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처벌받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 대부분의 국민들이 갖고 있는 자연스러운 정서요 여론이다.
 
선진각국에서는 정당방위의 요건을 폭 넓게 인정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서 공권력에 대한 존경심까지 확보된다. 정당방위는 공권력 행사와 똑같다는 생각에서다. 언젠가 한국의 진보단체에서 미국 시위를 시도한 일이 있다. 미국에서는 현역 국회의원도 폴리스라인을 침범하면 현장에서 수갑을 채워 연행한다.
 
한국에서는 공권력을 쥐 잡듯 하던 진보단체들도 미국 공권력 행사의 엄정성을 사전에 지실(知悉)하고 아예 고분고분 경찰의 지시를 따라 별다른 불상사 없이 무사히 돌아왔다.
 
한국의 경찰이 시위대에 대응하는 것도 정당방위의 인정범위 내에서만 행동하기 때문에 스스로 낮잡아 보일 수밖에 없는 구조적 모순에 빠져있다.
 
엄정한 공권력이 강력한 정당방위를 지켜주지 못하면 사회는 불안해진다. 사회 곳곳에서 일어난 모든 범죄를 공권력이 지켜줄 수는 없다.
 
이럴 경우 개인의 정당방위를 폭 넓게 인정해주지 않는다면 사회기강은 무너지고 범죄는 활개를 치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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