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상고법원보다 대법관을 증원해야

이영노 | 기사입력 2015/02/02 [01:03]

<기고>상고법원보다 대법관을 증원해야

이영노 | 입력 : 2015/02/02 [01:03]

전 대 열 (전북대 초빙교수)

=사법 입법 행정으로 구분되는 삼권분립의 정신은 민주주의국가의 필수불가결한 원칙이다.

헌법은 이를 명백히 보장하고 있으며 어길 때에는 법에 의해서 어떤 형태로든지 처벌을 받도록 되어 있다.

특히 헌법재판소가 설치된 나라에서는 헌법위반 사항에 대한 엄격한 재판을 통하여 어떤 기관을 막론하고, 어떤 법률일지라도 위헌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가차 없이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헌법재판소 제도가 도입된 이후 사회적, 국가적으로 관심을 집중시켰던 사건에 대해서 명백한 판결이 내려져 가부(可否) 호오(好惡)의 다툼에 종지부를 찍었다. 대표적 사건이 수도이전 건이었다.

 

노무현은 수도를 서울에서 충청도로 천도하기로 결정하고 행정부 단독으로 이를 강행하려고 했다.

 

이 때 헌법재판 전문가인 이석연변호사 등이 앞장서 ‘수도이전은 위헌’이라는 소송을 헌재에 제기했고 이게 받아드려져 수도가 통째로 옮겨지는 최악의 사태를 막았다. 그 뒤 행정수도로 탈바꿈되어 결국 세종시로 정부청사가 옮겨지고 말았지만 이 문제는 이번에 발간된 이명박 회고록을 통해서 재연(再燃)되고 있어 노무현의 집념이 빚어낸 후유증으로 아직도 진행형이다.

 

그 다음 큰 사건이 노무현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되어 헌재로 넘어갔을 때 개헌도 가능한 국회의원 3분의 2이상이 찬성한 탄핵안을 헌재가 비토한 사건이다.

 

탄핵안에 대해서 헌재는 가부를 따질 권한이 없으며 탄핵의 요식절차만 밟아야 한다는 이론도 있었으나, 헌재는 이를 무시하고 독자적 판단을 한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지난 달 마무리된 통합진보당 해산사건이다.

 

한국에서는 역사상 처음으로 제기된 정당해산 사건으로 헌재는 1년 넘게 심리를 거듭한 끝에 결국 8대1의 압도적 찬성으로 통진당 해산을 결정했다.

이처럼 헌법위반과 관련한 사건은 전국을 들끓게 하며 국민의 관심을 모으게 한다.

그러나 국민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없거나 신문 방송 등 매스컴에서 떠들어주지 않는 문제는 실제로 위헌사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슬그머니 넘어갈 수도 있어 냉철한 판단이 요구된다.

 

사법부에서 논의하고 있는 상고법원 같은 게 그런 유(類)다. 사법제도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3심제를 채택하고 있다. 봉건왕조 시대에는 삼권분립 정신이란 개념조차 없을 때였기 때문에 왕이 임명한 지방관이 행정과 재판을 독점했다.

 

여기서 파생되는 독선과 비리 부정이 끊이지 않았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살이를 하거나 재산을 빼앗기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런 불공평한 세상을 바로 잡겠다는 게 민주주의다. 한번 재판으로 만족하지 않고 두 번 재판을 걸어야 하며 마지막 세 번째까지도 도전해 보는 게 사람의 심리다.

 

지방법원에서 1심을 마치면 고등법원에 항소할 수 있고 마지막으로 대법원에 상고할 수 있는 장점이 3심제 재판이다.

이를 못하게 강제할 수 없는 게 민주사회의 법이다.

소송 당사자들은 절박한 심정으로 재판에 임한다. 때로는 억울하고, 분해서 상소를 거듭하는 수도 있지만 자신의 주장에 확신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다보니 대법원 상고사건이 너무 많다는 사법부의 호소가 오히려 자연스러울 때도 있다.

그렇다고 이를 물리적으로 억제하겠다는 발상은 재판의 공평성과 정의감을 해치는 일이 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지금도 많은 상고사건이 ‘심리 불속행’이라는 이름으로 기각되고 있어 당사자들의 불평이 크다.

 

변호사를 선임하여 상당한 비용까지 들어간 사건인데 허망하게 끝나버리는 대법원 판결에 어이가 없다. 그렇다고 어쩌겠는가.

 

오죽하면 대학교수가 판사를 찾아가 화살까지 쐈다고 해서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았겠나?

이런 일들을 뭉뚱거려 상고법원을 설치하겠다는 구상이 구체화하고 있다.

올 9월에 출범할 요량으로 이미 국회의원 168명의 서명을 받아 국회에 법안이 제출되어 있다. 재적과반수 148명을 뛰어넘는 숫자다.

이대로라면 상고법원 설치법은 무조건 통과될 기세다.

과연 그래서 될까. 상고법원 설치를 위해서 사법정책자문위원회를 가동한 일이 있다.

여기서 “상고법원은 4심제와 같은 외양(外樣)이 강화되고 실제로 4심제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이 나와 없던 일이 되었다.

자기들끼리의 연구에서도 이런 결론이 나온걸 보면 외부 전문가들까지 가세한다면 3심제 재판이 4심제로 혼란을 가중시킬 것이라는 견해가 우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상고법원이 설치되면 상고사건의 99%를 처리하고 대법관들은 300~500건 정도의 필수적 심판사건만 담당한다는 것인데 이에 불만인 상고인들의 4심 요구를 어떻게 막겠다는 것인가.

더구나 대법관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는 자리로 최종재판의 권위를 갖고 있다.

 

그러나 상고법원 판사는 대법원장이 임명하기 때문에 최종심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국민의 여론을 무슨 수로 달랠 수 있을까. 1년 상고사건 3만6천여 건이 너무 많아서 13인의 대법관으로 부족함을 느끼면 대법관 수를 대폭 증원하는 게 순서다. 대법관의 권위는 소수를 고수하는 것보다 공평하고 정의로운 재판을 통해서 발양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상고법원은 폭주하는 상고사건을 자칫 졸속과 오판으로 사법부의 흠집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하고 사실상의 4심제 재판은 국민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칠 수 있음을 깨닫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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